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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화(士禍) 간단 정리
    education 2017. 4. 29.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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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화(士禍) 간단 정리

    사화란 조선 중앙 정계에서 훈구와 사림의 대립이 일어나는 가운데, 훈구 세력이 사림 세력을 탄압한 사건을 말합니다.


    무오사화(1498, 연산군)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기 위해 연산군은 사림과 훈구를 모두 억눌렀는데 특히 사림에 대한 제약이 심했습니다. 사림파 김일손이 그의 스승 김종직[조의제문]을 실록의 초안인 사초에 기록하였습니다. 여기서 조의제문이란 삼촌에게 왕위를 뺐긴 중국의 의제를 조문한 형식의 글로 속뜻은 단종의 왕위를 빼앗은 세조를 비난한 글입니다.


    훈구파 유자광, 이극돈 등이 연산군에 김일손의 조의제문을 실은 동기가 불순하다고 고하였고, 이에 연산군은 김종직을 부관참시하고 김일손과 권오복 등을 처형, 정희량과 김굉필, 이계명 등을 유배 보냈습니다.



    갑자사화(1504, 연산군)


    연산군의 측근 임사홍은 권력을 독차지하기 위해 폐비 윤씨 사건을 연산군에게 보고합니다. 연산군은 자신의 생모가 사약을 받게 된 폐비 윤씨 사건에 가담했던 한명회 등의 훈구 세력과 이에 연루된 사림 세력 모두를 처참하게 처형하였습니다. 이 결과로 영남 사람의 대부분이 몰락하고, 폭정을 지속하던 연산군은 결국 2년 뒤 중종반정으로 폐위됩니다.



    기묘사화(1519, 중종)


    중종은 공신 세력의 견제를 위해 조광조를 포함한 신진 사림들을 등용합니다. 조광조경연 강화, 현량과 실시, 소격서 폐지, 향약 실시를 통해 성리학적 도학 정치를 강조하면서 급진적 개혁을 추진하려고 하였는데, 때문에 공신과의 대립과 갈등이 심화됩니다.


    사림은 중종반정의 공신 책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구실로 위훈삭제(僞勳削除)를 강력히 주장하고 이 사건으로 공신의 4분의 3이 공신에서 탈락하여 토지와 노비를 환수 당하게 됩니다. 결과 훈구파의 강한 반발로 조광조와 대부분의 사림이 참화를 당합니다.



    을사사화(1545, 명종)


    중종 뒤에 즉위한 인종이 일찍 죽자 이복동생인 명종이 즉위하면서 인종과 명종의 외척끼리의 권력 다툼이 심해집니다. 인종의 외숙 윤임(대윤)과 명종의 외숙 윤원형(소윤)간의 대립입니다. 소윤이 대윤을 역적으로 몰아 대거 숙청하였고, 이와 연계된 사람들이 피해가 막대했습니다.


    네 차례의 사화로 사림은 낙향을 하고 이후에 서원과 향약을 통해 향촌 사회에서 세력을 꾸준히 확대시킵니다. 이후 선조가 즉위하면서부터 사림 세력은 중앙 정계로 대거 진출하게 됩니다.


    무->갑->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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